'읽기'에 해당되는 글 2건

  1. 2017.08.27 Form
  2. 2007.01.27 <고래>와 음악적 강박

Form

읽기 2017. 8. 27. 20:13

"All things are bound together by order, and this is form, which brings the universe into the likeness of God."

-Dante

Posted by tiny
,

천명관의 <고래>는 마르께스의 <백년 동안의 고독>을 즉각 상기시켰다. 그 수많은 가족의 이름, 관계를 다 외우고 그 각각의 역할을 상세히 분석하고, 그래서 분석이 실제로 소설 속에서 실증되자 그 책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던 그 소설 말이다.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우리가 그 소설의 분석을 ‘베낀 것’으로 간주한 강사선생님에게 몸을 부르르 떨며, 내 족보며 같이 분석한 홍중이형의 족보까지 들이댔던 바로 그 소설 말이다. 그 때, 우리의 기세에 밀려 그 강사는 마지막 순간에, 사과의 뜻으로 냉면을 사주던 마지막 순간에 ‘그런데, 전체적인 소설의 인상은 어땠나요?’ 라고 물을 때, 그 때 나는 그저 그 물음을 무시했었다. 패배한 자의 그저 소심한, 그리고 소극적인 반격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.

지금은, 그러니까 그 당시의 소름끼치던 감동이 희미해진 지금은, 그러나 그 물음이 아주 정당하고도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. 그러니까 내가 그 소설을 아주 잘 <분석>했을 지언정, 그 소설을 <감상>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. 그러니, ‘마술적 리얼리즘’이라는, 통상 그 소설에 붙어있던 용어의 앞의 반쪽 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했다.

<고래>는 <백년 동안의 고독>이 마술적인 만큼 마술적이고 그것이 리얼리즘적인 만큼 리얼리즘적이다. (심지어 쌍둥이를 등장시키는 것도, 닮았다)

그러나, <백년 동안의 고독>이 희미하게 기억되는 지금 내겐, <고래>는 훨씬 음악적이다. 거기엔 형식에 대한 거의 ‘강박’이 숨어있다. 그것이 그 소설의 재미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.

어쨌든, 매우 즐거운 소설이었다. 아주 경쾌하게 읽혔으며, 읽는 동안, 한 20년 만에 장편을 읽는 나를 한 껏 사로잡아 그것을 다 읽는 네 시간여 동안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. ...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소설을 산 목적이었으니, 그로써 썩 훌륭하였다.

Posted by tiny
,